
저는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 자기계발 콘텐츠를 소비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루틴을 따라 해보기도 하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뭔가를 채우려 했지만 정작 그 안에 내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또 삶의 많은 부분 타인의 감정과 상황에 맞춰 살아온 시간이 쌓이고 나니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호해져 있었습니다. 이 글은 그 혼란 속에서 읽게 된 유영만 작가의 《코나투스》가 저에게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기계발을 열심히 했는데, 왜 자아는 탕진되는 걸까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자기계발 영상을 보고, 책을 읽고, 좋은 습관을 따라 하는데 어느 순간 더 공허해지는 느낌. 저는 그게 단순히 의지 부족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 원인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철학자 들뢰즈가 말한 '동일성의 오류'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동일성의 오류란, 개인마다 다른 맥락과 개성을 무시한 채 타인의 성공 방식을 그대로 복제하려는 시도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오리가 토끼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것과 같은 구조입니다. 오리에게 최적화된 방식이 토끼에게는 찢어진 물갈퀴와 동상만 남길 수도 있는 거죠. 제가 한때 그랬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아침 루틴, 파이어족이 된 사람의 투자공부 방식 등을 따라 해봤지만 남은 건 피로감과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뿐이었습니다.
여기서 스피노자의 '코나투스(conatus)' 개념이 등장합니다. 코나투스란 스스로 존재를 유지하고 자기 자신을 확장하려는 근원적 욕망을 뜻합니다. 쉽게 풀면, 나를 살아있게 하는 내면의 에너지이자 방향감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17세기 저작 《에티카》에서 이 개념을 통해 존재의 본질을 설명했는데, 유영만 작가는 이것을 현대의 자기계발 문제와 연결 짓습니다. 남의 코나투스를 흉내 내는 복사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고유의 코나투스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 코나투스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저는 오랫동안 타인의 감정에 맞춰 살았습니다.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보다 상대가 어떻게 느낄지를 먼저 계산하며 살아온 시간이 길었습니다. 그 결과는 '나는 뭘 원하지?'라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지금이라도 기준점을 내게 두고 살고자 하니 이상하게도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이 감각 자체가 어쩌면 제 코나투스가 오랫동안 억눌려 있었다는 신호였을지도 모릅니다.
코나투스를 증진시키는 방법을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 경험(Experience)의 깊이와 넓이를 키울 것: 체험이 아닌 진짜 경험을 쌓아야 한다
- 사고(Reasoning)의 깊이를 높일 것: 독서와 인간관계를 통해 사유의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 언어(Language)를 벼릴 것: 자기만의 언어로 경험을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맞물릴 때 비로소 자기만의 '일생이론'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일생이론이란 자신의 삶에서 길어올린 성장 방정식, 즉 나만의 성공 논리를 의미합니다. 남의 공식이 아니라 내 경험을 재료로 만든 이론입니다.
나다움은 혼자서 찾을 수 없다는 것
저는 한동안 '나를 찾는 작업'을 혼자 했습니다. 종이를 펼쳐놓고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하고 싶은 것 등을 적어보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이것저것 시도해봤습니다. 그 과정이 아예 무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윤곽은 잡혔으니까요. 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모호함이 항상 남았습니다. 그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늘 답답함이 있었는데 이 책에서 그 답을 만났습니다.
작가는 진정한 나다움은 고립된 사투에서 생겨나지 않으며 타자를 전제로 하는 사회적 합작품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놓치고 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나를 찾겠다며 오히려 관계에서 멀어지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늘렸던 게 역효과였던 셈입니다. 앞서 읽었던 책 아웃풋 법칙에서 정체성은 피드백을 통해 만들어진다던 렘군님의 말 역시 이와 일맥상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상 앞에서 혼자 답을 찾으려 했던 저의 방식이 왜 한계에 부딪혔는지 이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 명확합니다.
이 지점에서 '아웃사이트(outsight)'라는 개념이 중요해집니다. 아웃사이트란 바깥으로 나가 직접 보고 겪으며 얻는 외부 지향적 통찰을 말합니다. 흔히 말하는 인사이트(insight), 즉 내면을 들여다보는 통찰과 반대 방향에 있는 개념입니다. 흥미롭게도 아웃사이트가 바뀌어야 인사이트도 바뀐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입니다. 방 안에서 아무리 자신을 들여다봐도 새로운 경험과 관계가 없으면 생각의 틀 자체가 바뀌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또한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학술적 논의에서도 코나투스는 개인이 고립된 상태에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세계와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증진된다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결국 나다움을 찾는 일은 내가 세상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체험'과 '경험'의 차이도 이 맥락에서 핵심적입니다. 체험이란 일회적이고 계획된 자극으로, 어제의 체험이 오늘의 체험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반면 경험은 우발적이고 연속적이며, 시간이 쌓이면서 내러티브(narrative)가 탄생합니다. 내러티브란 삶의 사건들이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자기만의 서사를 뜻합니다. 이 서사가 생겨야 비로소 삶의 주도권이 생깁니다. 저 역시 체험은 많이 했지만 경험이 쌓이지 않은 채 살아왔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나만의 언어를 갖지 못하면 경험을 해도 그것이 온전히 내 것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경험을 재해석하고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에서 언어가 핵심 도구가 됩니다. 언어가 부실하면 아무리 많은 경험을 해도 타인의 언어로 이해하는 데 그치고 맙니다.
결국 코나투스를 발견하는 일은 책상 앞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관계 속으로, 경험 속으로, 낯선 자극 속으로 기꺼이 몸을 던질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는 지금 그 용기를 조금씩 내는 중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심장이 뛰는 일을 하고 계신가요, 아니면 다리가 떨리는 일을 하고 계신가요? 그 질문이 어쩌면 자신만의 코나투스를 찾는 첫 번째 실마리가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