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3월이 되면 저는 산수유 꽃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옵니다. 예전에는 그냥 나무에 달린 노란 꽃이었는데,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읽고 나서부터 그 꽃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책 한 권이 계절을 보는 눈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걸, 직접 겪어보니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다독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날
빨리빨리 많은 책을 읽어보려고 했습니다. 저도 한때 연간 독서량을 기록하며 뿌듯해하던 사람이었으니까요. 50권, 100권이라는 숫자를 채우는 게 독서를 잘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책은 도끼다』를 읽으면서 다독이 아닌 숙독의 의미와 즐거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다독 콤플렉스란 많이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된 독서 태도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책의 내용보다 권수에 집착하는 방식인데, 이렇게 읽으면 정작 남는 게 없다는 걸 박웅현은 정확하게 짚어냅니다. 그가 말하는 건 간단합니다. 일 년에 다섯 권을 읽어도 줄 친 문장이 얼마나 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밑줄 하나 없이 읽어낸 책보다 세 군데에 줄을 긋고 그 문장을 며칠 동안 생각한 책이 훨씬 오래 남습니다. 저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처음 읽었을 때 그냥 넘겼다가, 몇 년 뒤 다시 펼쳤을 때 전혀 다른 문장들이 눈에 들어오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건 책이 달라진 게 아니라 제가 달라진 것이었습니다.
『책은 도끼다』를 읽고 이후 저의 독서 방식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빨리 넘기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울림이 오는 문장 앞에서 멈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읽은 책의 수는 줄었지만, 책을 덮고 난 뒤에 남는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울림 독서, 감각의 문을 여는 방법
박웅현이 『책은 도끼다』에서 소개하는 독법의 핵심은 울림독서입니다. 울림독서란 단순히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문장이 내면에 진동을 일으킬 때까지 천천히 읽는 방식입니다. 다독이 양적 접근이라면, 울림독서는 질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소개하는 방법은 구체적입니다. 울림을 준 문장에 줄을 긋고, 그 문장을 따로 타이핑해 두고, 때로는 자리 옆에 붙여놓는 것.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과정이 사실은 감수성을 키우는 훈련입니다. 여기서 감수성이란 단순한 감정 반응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의미를 포착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 가장 놀랐던 건, 책 소개가 이렇게 사람을 끌어당길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설명하면서 사랑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풀어내는 방식, 카뮈의 『이방인』 문장이 왜 독립적으로 서 있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은 그 책을 당장 읽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광고 카피라이터 특유의 표현력이 독서 에세이에서도 그대로 살아 있었습니다.
감수성이 깨어난다는 것의 의미
책을 읽고 감수성이 확장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너무 추상적으로 들렸거든요.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생각보다 구체적인 변화였습니다.
감수성 확장이란, 이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것들이 어느 날부터 의미 있게 다가오기 시작하는 현상입니다. 박웅현은 이것을 '촉수'라는 단어로 표현하는데, 책이나 예술이 우리에게 새로운 촉수를 만들어준다고 말합니다. 김훈의 문장을 읽고 나서야 산수유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그의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봄마다 확인합니다.
인문 교양서 분야에서 이 책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독서 문화 전반을 살펴보면, 독서 인구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 연간 독서율이 2023년 기준 43%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문화체육관광부). 이런 흐름 속에서 『책은 도끼다』는 독서를 의무나 성취의 개념으로 보지 않고, 삶의 감각을 살리는 행위로 바라보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기록을 해두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반복해서 읽게 된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가 됐습니다. 이렇게도 느끼고, 이렇게도 받아들일 수 있구나 하는 사고의 확장이 단순한 정보 습득과는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책이 도끼가 되는 순간
카프카는 말했습니다. 책이란 우리 안에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여야 한다고. 박웅현은 이 문장을 책 제목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방식으로 증명해냅니다.
독서의 내면화란 읽은 내용이 의식 아래로 가라앉아 자신의 사고방식과 감각에 스며드는 과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책에서 읽은 문장이 어느 순간 자신의 말로 나오고,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박웅현은 톨스토이를 읽다가 자신이 평소에 쓰던 표현이 사실 그 책 속 문장이었다는 걸 뒤늦게 발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독서의 내면화가 쌓이면, 비 오는 날 풍경이 달라지고, 계절이 달라지고, 일상의 작은 장면들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합니다. 저도 어느 가을 오후에 공원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과 소리를 들으며, 그 순간이 갑자기 특별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습니다. 이전이었다면 그냥 넘겼을 장면이었습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독자들이 책을 통해 가장 크게 얻는 것으로 '정서적 안정과 삶의 질 향상'을 꼽는 비율이 꾸준히 높게 나타납니다(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책은 도끼다』는 그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책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깊이 읽는다는 건 결국 내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행위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고 가장 오래 남은 생각입니다.
『책은 도끼다』는 독서법 안내서가 아닙니다. 저자는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렇게 읽으니 삶이 풍요로워졌다고, 그 울림을 나누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 태도가 오히려 독자의 마음을 열게 만듭니다. 읽은 뒤 책장을 덮고 창밖을 바라봤을 때, 바깥 풍경이 어제와 조금 달라 보인다면 그게 바로 도끼질을 받은 순간입니다. 이 책은 그 순간을 만들어주는 그런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