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처음 블로그를 개설한 건 2004년입니다. 벌써 22년이 되었습니다. 정기적이진 않지만 나름대로 꾸준히 기록해 왔지만 정작 그 기록들이 제 삶을 바꿔주지는 못했습니다. 이 글은 그 이유를 뒤늦게 깨달은 과정, 그리고 지금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씁니다.
22년을 썼는데 왜 아무것도 쌓이지 않았을까
앞서 언급했듯 저는 2004년부터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일기도 써보고 체험단 후기도 올리고 책 리뷰도 남겼습니다. 운동 기록도 있고 그냥 쓰고 싶어서 쓴 글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 1회씩만 발행했어도 22년이면 1,000개가 넘는 콘텐츠가 쌓였을 시간인데 실제로 그 글들이 저에게 가져다준 변화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유를 몰랐습니다. 아니, 솔직히는 이유를 찾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꾸준하지 못해서"라고 스스로를 탓하고 끝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문제의 핵심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해온 글쓰기는 형태만 아웃풋(output)이었을 뿐 본질은 인풋(input)과 다를 게 없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아웃풋이란 단순히 무언가를 세상에 내보내는 행위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 세상과 연결되기 위해 제공하는 생산물을 의미합니다. 저는 22년 내내 저 자신을 위해서만 글을 썼고, 그것은 결국 소비자의 영역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기록이었던 셈입니다.
콘텐츠 생산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구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인풋(input)이란 지식, 경험, 정보를 흡수하는 행위이고, 아웃풋은 그것을 타인이 소비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해 내보내는 행위입니다. 블로그에 일기를 쓰는 것은 발행이라는 껍데기를 갖췄지만 방향이 철저히 자신을 향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웃풋이 아닙니다.
국내 1인 미디어 시장 규모가 2022년 기준 약 8조 원을 돌파했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이 거대한 시장에서 살아남는 크리에이터들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누군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정체성을 찾는 것과 방향성을 잡는 것, 무엇이 먼저인가
이 책에서 가장 오래 씹히는 챕터가 있다면 저는 단연 3단계 정체성 파트를 꼽겠습니다. 퍼스널 브랜딩(personal branding)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이 개념을 자주 들어보셨을 텐데 퍼스널 브랜딩이란 개인이 특정 분야에서 갖는 고유한 인식과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구축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막상 생산자가 되려고 마음을 먹고 시작하는 과정에서 정체성이 먼저냐 방향성이 먼저냐 하는 문제가 생각보다 명쾌하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책에서는 정체성은 서서히 찾아지는 것이지만 방향성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정체성과 방향성을 따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인가, 그렇다면 방향성은 어떻게 설정해야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곱씹어보니 이렇게 이해가 됐습니다. 정체성은 결과고, 방향성은 과정에서 세우는 가설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정체성을 발견하려 하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합니다. 대신 "나는 이쪽 방향으로 가보겠다"는 가설을 세우고 아웃풋을 내보내면서, 타인의 피드백을 통해 정체성이 조금씩 다듬어지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핵심 키워드가 등장합니다. 바로 MCBI입니다. MCBI란 메시지(Message), 콘텐츠(Contents), 비즈니스(Business), 투자(Invest)의 네 가지 성공 방향을 의미하며, 자신이 어느 사분면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지를 먼저 설정하고 집중하라는 프레임워크입니다. 이 개념이 유용한 이유는 "무엇이든 다 잘하자"는 막연한 목표 대신 자신이 집중할 영역을 먼저 좁혀준다는 점에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이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뚜렷한 정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처럼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렵고,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타인의 눈으로 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을 피하면 아웃풋의 방향 자체가 흔들립니다.
핵심 정리를 해보면 이렇습니다.
- 정체성은 혼자 완성되지 않으며 타인의 피드백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 방향성은 완벽하지 않더라도 가설로 먼저 세워야 합니다
- MCBI 사분면 중 자신에게 맞는 한 영역에 먼저 집중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 아웃풋을 내보내야만 피드백이 생기고, 피드백이 있어야 정체성이 다듬어집니다
그럼 지금 당장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솔직한 감상은 이랬습니다. "맞는 말이고 고개도 끄덕여지는데, 막상 오늘 뭘 해야 하지?"였습니다. 이게 대부분의 자기계발서가 갖는 한계이기도 한데 이 책은 그 한계를 일부 해소하려는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 다소 다릅니다.
책에서 강조하는 온리원(only one) 전략이 특히 그렇습니다. 온리원이란 넘버원(number one), 즉 경쟁에서 1등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을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가장 잘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유일한 사람이 되자는 전략입니다.
그 첫걸음으로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딱 한 명을 정하고 그 사람을 위해 쓰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혹은 친한 동료에게 쓰는 글처럼 말입니다. 광범위한 독자를 상정하면 오히려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막막했던 글감이 "이 사람이라면 무엇이 궁금할까?"라는 질문 하나로 갑자기 구체화되거든요.
또 한 가지 제가 눈여겨본 지점은 저항(resistance)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저항이란 새로운 행동을 시작하려 할 때 내부와 외부에서 발생하는 방해 요소 전반을 일컫습니다. 책에서는 이를 외부 저항과 내부 저항으로 나누는데, 사실 대부분의 저항은 외부보다 스스로 만들어낸다는 지적이 뼈아팠습니다. "아직 준비가 덜 됐어", "조금 더 공부하고 나서 시작할게"가 바로 스스로 만드는 저항의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콘텐츠 마케팅(content marketing) 관점에서도 이 문제는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콘텐츠 마케팅이란 제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홍보하는 대신, 타깃 독자에게 유익한 콘텐츠를 꾸준히 제공함으로써 신뢰를 쌓고 결국 행동을 이끌어내는 마케팅 방식입니다. 국내 중소기업 중 콘텐츠 마케팅을 실제로 운영하는 비율은 아직 30%대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 개인도, 기업도 시작을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은 결국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착각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 한켠에서 생긴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나도 이 책에서 제시된 방법으로 생산자로서의 삶을 시작하고 이 과정, 즉 방향을 찾지 못해 막막한 사람들이 첫 아웃풋을 낼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또 하나의 방향성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자체가 이미 이 책이 말하는 과정을 살짝 경험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웃풋을 시작하는 데 완벽한 타이밍은 없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라면, 우선 딱 한 명을 떠올려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에게 오늘 하루 도움이 될 만한 문장 하나를 써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