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뭔가를 하고 있는데 마음이 텅 빈 것 같다는 느낌, 한 번쯤 있으셨을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매일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지지부진하고 답답할까라는 마음으로 공원을 산책하다 책읽는 광장 책부스에서 '공허의 시대'라는 책을 우연히 펼쳐들었습니다.
목적주의가 우리를 어떻게 소진시켜 왔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랫동안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는 삶이 당연히 옳다고 믿습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20대에는 취업이라는 목표 하나로 몇 년을 버텼고, 30대에는 체중 감량 목표를 세워 식단과 운동을 몇 달간 이어갔습니다. 12kg을 뺐을 때 잠깐 성취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습니다. 일상의 스트레스가 다시 밀려오자 예전 습관으로 돌아갔고, 체중도 돌아왔습니다. 남은 건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없을까"라는 자책뿐이었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목적주의(Purposivism)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오직 미래의 특정 목적 달성에서만 찾는 인생관을 말합니다. 여기서 목적주의란 목표를 갖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목표에 도달하기 전까지의 시간 전체를 무가치하게 여기게 만드는 프레임을 가리킵니다. 학교에서는 성적이라는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즉 핵심성과지표를 요구하고, 직장에서는 실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구조가 오랫동안 이 프레임을 강화해왔습니다.
진화학적 관점에서도 이 구조는 흔들립니다. 인간은 어떤 고정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설계된 존재가 아닙니다. 인류는 수십만 년 동안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생존하며 살아온 종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삶에 정해진 방정식이 있는 것처럼 그 안에서 자신을 채점해왔습니다.
직장인 가운데 69% 이상이 번아웃(burnout, 극도의 신체·정서적 소진 상태)을 경험했다는 통계는 이 구조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냅니다(출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번아웃이란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장기간 목표 지향적 삶을 유지하다가 내적 동력 자체가 고갈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저는 이 숫자를 보면서 제 경험이 개인적 나약함이 아니라 구조적 결과였다는 걸 처음으로 납득했습니다.
목적주의 프레임이 우리를 소진시키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목표에 도달하기 전의 모든 시간을 '아직 부족한 상태'로 규정한다
- 달성에 실패하면 능력이나 의지 부족으로 자책하게 만든다
- 달성에 성공해도 도파민(dopamine) 보상이 순간에 그쳐 곧 새로운 목표를 갈망하게 만든다
공허감의 구조, 개인 탓이 아니었다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공허감은 게으름이나 의지 부족과 전혀 다른 감각입니다. 바쁘게 움직이는데도, 심지어 계획했던 것들을 해내는 와중에도 찾아옵니다.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이 책은 그 공허감의 원인을 개인이 아닌 인생관 프레임에서 찾습니다.
뇌과학에서 말하는 도파민(dopamine) 회로가 이 공허감의 핵심 메커니즘을 설명해줍니다. 도파민이란 목표를 향해 나아가거나 달성할 때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로, 쾌감과 동기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문제는 이 도파민이 목표를 달성한 순간 급격히 감소하고, 뇌는 곧바로 새로운 자극을 원한다는 점입니다. 성취 직후에 찾아오는 허무함, 이른바 '포스트 어치브먼트 블루스(Post-Achievement Blues)'가 바로 이 구조에서 비롯됩니다. 포스트 어치브먼트 블루스란 어떤 큰 목표를 달성한 직후 찾아오는 공허감과 무기력증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저 역시 체중 감량에 성공했을 때 기쁨보다 "그래서 이제 뭐?"라는 감각이 더 빠르게 왔던 걸 기억합니다. 그때는 제가 이상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건 뇌의 자연스러운 작동 방식이었습니다.
고성장 착시(Growth Illusion)라는 개념도 중요합니다. 고성장 착시란 경제 전체가 급격히 성장하던 시대에 개인의 노력만으로도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경험이, 마치 '열심히 하면 된다'는 보편적 공식으로 굳어진 현상을 가리킵니다. 실제로 그 성과의 상당 부분은 개인 역량이 아니라 시대적 구조가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구직을 포기한 이른바 '쉬었음 청년'의 비율이 해마다 늘어나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출처: 통계청). 사회 구조가 바뀌었음에도 개인에게는 여전히 과거의 공식을 요구하는 셈입니다.
책에서 말하는 내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와 외적 동기(Extrinsic Motivation)의 구분도 이 공허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내적 동기란 활동 자체에서 즐거움과 의미를 느끼며 움직이는 힘을 말하고, 외적 동기란 보상이나 평가 같은 외부 요인에 의해 움직이는 힘을 말합니다. 목적주의는 대부분 외적 동기에 기대는 구조입니다. 동기부여 강연을 들으면 잠깐 불타오르다 금방 꺼지는 이유가 바로 이 외적 동기의 한계 때문입니다.
충만주의, 삶을 되찾는 실제적인 방향
이 책의 대안이 카르페디엠(Carpe Diem)이나 '현재에 충실하라' 같은 기존 철학과 결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저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챙김(Mindfulness)이나 플로우(Flow) 이론처럼 현재 몰입을 강조하는 개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책이 다른 점은 그 개념들을 '감성적 위로' 수준에 머물지 않고, 왜 목적주의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지를 먼저 논리적으로 해체한 뒤 대안을 제시한다는 구성에 있습니다. 순서가 다릅니다. 먼저 프레임의 잘못을 증명하고, 그다음에 대안을 내놓는 방식이라 설득력이 더 단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충만주의(Fulfillmentism)란 목적 달성 여부와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의 경험에 100% 몰입하고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인생관입니다. 여기서 충만주의란 결과를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결과에만 삶의 가치를 위탁하는 방식을 내려놓으라는 의미입니다. 운동을 할 때 목표 체중보다 지금 이 몸이 살아있다는 감각에 집중하는 것, 식사를 할 때 칼로리 계산보다 눈앞의 음식을 온전히 맛보는 것이 충만주의의 실천입니다.
솔직히 이게 쉽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수십 년간 쌓인 목적주의적 사고방식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제가 달라진 게 하나 있다면, 이제는 체중이 다시 늘었을 때 "나는 의지가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 판단 자체가 목적주의 프레임이 만들어낸 자책이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공허의 시대를 살고 있는 건 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공허함의 원인이 저의 나약함도 아니었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충분했습니다. 아직 삶의 방향이 흔들린다면, 지금 당장 목표를 새로 세우는 것보다 먼저 이 질문을 한번 던져보시길 권합니다. "나는 지금 어떤 프레임으로 내 삶을 평가하고 있는가?"